핵심 요약
- 잘 분산된 포트폴리오는 자산군뿐 아니라 지역과 통화까지 분산해야 하지만, 유럽 주식에는 손이 잘 가지 않습니다. 선진국 중에서도 성장률이 가장 낮기 때문인데, 경제성장률은 이해가 가더라도 기업의 성장인 주가까지 부진한 데에는 몇 가지 다른 요인이 있습니다.
- 우선 유럽 가계는 미국보다 저축을 많이 하지만, 주식이나 펀드 같은 시장성 증권의 비중은 17%로 미국(43%)의 절반에도 못 미칩니다. 저축의 상당 부분은 매년 미국 등 역외로 빠져나가고, 그 결과 주식 시장은 얕아지고 알짜 기업들도 떠납니다.
- 주식 기피의 또 다른 이유는 투자 조언에 대한 불신입니다. 유럽에서는 상품이 은행 창구에서 판매 커미션과 함께 팔려 조언이 수수료가 높은 상품 쪽으로 기울기 쉽습니다.
- 이런 비용 구조는 불신과 낮은 참여율, 기업 이탈, 주식시장 부진의 악순환으로 이어집니다. 그러나 이는 인구 고령화와 달리 바꿀 수 있는 문제들이어서, 개선된다면 유럽 주식을 편입하는 데 망설임이 줄어들 수 있습니다.

스크립트
프리즘 투자자문 CIO 배재현입니다.
오늘은 유럽 주식 시장에 대해서 얘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잘 분산된 포트폴리오를 구축하려면 자산군만 분산해서는 안 됩니다. 같은 자산군 내에서도 지역과 통화까지 잘 분산해야 진짜 잘 분산된 포트폴리오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제아무리 신중한 자산 배분 투자자라도 주식을 배분할 때 유럽에는 손이 잘 안 나가죠. 나이가 제일 많은 국가들, 즉 선진국 중에 선진국들이다 보니까, 참고로 선진국의 선은 먼저 선입니다. 그런 선진국들이다 보니까 성장률이 가장 낮습니다. 다만 경제성장률이라면 이해가 가는데 기업의 성장인 주가까지 그런 것은 혹시 다른 이유가 있지 않나 의심하게 되죠. 가장 큰 요인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여기 몇 가지 요인이 있습니다.
일단 유럽 사람들은 주식 투자를 하지 않습니다. 그나마 팬데믹 때 비교적 많은 투자자가 주식시장으로 유입이 되었지만 그때뿐이었어요. 상당 부분이 다시 빠져나갔습니다. 회전문처럼 들어올 사람 들어오고 나갈 사람 나갔습니다. 유럽은 어떨까요? 오로지 저축입니다. 유럽 가계는 미국보다 더 많이 저축을 합니다. 연간 저축액이 약 1조 4천억 유로로 미국의 8천억 유로를 훨씬 웃돕니다. 그러나 가계의 자산 중 주식이나 펀드 같은 시장성 증권이 차지하는 비중은 17%에 불과합니다. 미국은 43%니까 반에도 못 미치는 셈이죠.
재미있는 것은 그렇게 쌓인 유럽의 저축 가운데서 매년 약 3천억 유로 정도가 역외로, 상당 부분 미국 시장으로 빠져나간다는 점입니다. 기업 자금의 약 70%를 은행 대출로 조달하는 유럽은 미국하고 거의 정확히 반대죠. 그 결과로 나타난 주식 자본의 품귀는 주식 시장을 얕고 파편화된 것으로 만들고 나아가서는 알짜 기업들까지 이탈하게 합니다. 2008년부터 2021년 사이에 태어난 유럽의 유니콘 기업 147곳 중에서 40곳이 본사를 해외로 옮겼습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까 지난 50년 동안 시가총액 1천억 유로를 넘는 기업이 유럽에서 새로 탄생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유럽 사람들은 의심이 많습니다. 이후의 조사에 따르면 자신이 받는 투자 조언이 주로 자기 이익을 위한 것이라고 믿는 소비자는 38%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10명 중에 6명이 넘는 사람들이 조언자를 믿지 않는다는 거죠. 문제는 이것이 소심함이나 의심병이 아니라 꽤 근거가 있는 의심이라는 점인데요. 유럽에서 투자 상품은 대개 은행 창구를 통해서 팔립니다. 이 창구는 상품을 만든 회사로부터 팔아준 대가를 받는데요. 판매 커미션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조언자의 저울은 어디로 갈까요? 고객에게 가장 이로운 상품이 아니라 자신에게 가장 많은 수수료를 안기는 상품 쪽으로 기울게 돼 있습니다. 여기에 높은 펀드 보수까지 얹히면 복리로 자산이 불어나는 것을 자연스럽게 방해하는 꼴이 되는 거죠. 상품은 비싸고 조언은 못 믿었고 차라리 예금에 묻어두자 그렇게 생각하는 게 합리적으로 보이는 거죠.
유럽의 주식 기피가 단순하게 평가하기 어려운 이유입니다. 실제로 유럽에서 투자하는 비용은 다른 곳보다 비싼 편입니다. 정확히는 은행이 권해서 파는 액티브 패키지 상품이 그렇습니다. 세계에서 펀드 보수가 제일 싼 나라는 미국이에요. 인덱스 펀드와 ETF가 굉장히 널리 퍼졌고 판매 자문 비용이 상품 가격에서 분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 은행이 판매를 지배하는 유럽 대부분의 시장에서는 상품에 커미션이 내장되어 있어요. 그래서 경쟁만으로는 보수가 좀처럼 내려가지 않습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현상이 하나 관찰됩니다. 판매 커미션을 사실상 금지한 네덜란드와 영국은 세계에서 펀드 보수가 가장 싼 축에 드는 반면 커미션을 그대로 둔 이탈리아는 그보다 약 2배 수준으로 비쌉니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축에 속하는 거죠. 커미션이라는 관행을 없앤 나라는 싸지고 남겨둔 나라는 비싸진 겁니다. 비용을 만든 것은 시장의 어떤 법칙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생긴 것이 아니라 업계의 관행이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물론 유럽연합도 규제를 통해서 이 커미션을 선보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업계는 과도하다면서 반발했고 전면 금지안이 나왔기는 했지만 결국 무산됐습니다. 2026년 여름에 회원국 승인을 거쳐서 살아남은 것은 아주 물렁물렁한 커미션 적정성 심사와 비용 공시 강화뿐이었으며 전면 금지 여부는 각국의 재량으로 넘겨졌습니다. 이러다 보니까 비싸고 이해상충적인 판매는 불신과 낮은 참여율을 통해서 기업 이탈과 주식시장 부진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낳는 거죠.
하지만 영원히 유럽 주식을 포트폴리오에서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분산 효과뿐만 아니라 언젠가 기회가 올 수도 있기 때문인데요. 한국 주식시장이 상법 개정안으로 남들 다 하던 것을 하게 된 것만으로도 퀀텀점프를 할 수 있었던 것처럼 유럽 주식시장도 잘 기억해보면 2024년에 독일을 중심으로 국가 부채에 대한 태도 변화만으로 역시 남들 다 하는 것을 하게 될 수도 있다는 그런 기대만으로도 미국 주식시장을 이긴 기억이 있습니다. 앞으로 투자자 비용, 기업 활동 여건 이런 것들이 개선되면 유럽도 충분히 기대를 충족시킬 수 있습니다. 상대적 약세의 일부분이 만들어진 것이라면 해소되면 그만입니다.
인구가 늙은 것은 어쩔 수 없지만 비싸고 불투명한 비용 구조와 열악한 기업 여건은 바꿀 수 있는 문제입니다. 물론 쉽지는 않을 거예요. 그래서 금방 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이 성공만 한다면 그때는 유럽 주식을 편입하는 데 망설임이 훨씬 덜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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