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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능은 해자가 아니다? 0원으로 수렴하는 AI 토큰과 진짜 돈 버는 기업의 조건


핵심 요약

  • 최근 한 AI 모델이 최고 수준 성능을 일주일간 무료로 공개했습니다. 이는 AI 성능이 비교적 빠르게 따라잡히고 가격도 낮아질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성능만으로는 경쟁우위(해자)를 오랫동안 확보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 데이터센터·반도체에 투입된 막대한 투자는 감가상각 비용으로 서서히 반영됩니다. 그런데 AI 토큰 가격은 점점 낮아지는 추세라 수익성에 부담이 될 수 있습니다. 다만 가격이 낮아지면 사용량이 오히려 늘어날 가능성(제본스의 역설)도 함께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 가격 하락은 ‘성능’의 판매에 의존하던 기업에는 부담이 될 수 있지만, 값싼 AI를 ‘유통·연결’하는 기업에는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투자자는 기술 성능뿐 아니라 경쟁우위와 수익 구조를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스크립트

안녕하세요.
프리즘투자자문 CIO 배재현입니다.

오늘은 AI를 사용하는 데 드는 가격, 이 가격을 주가와 연결해서 얘기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최근 인공지능 업계에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름도 밝히지 않은 정체불명의 최첨단 AI 모델이 갑자기 등장해서 일주일 동안 하루 백조 개의 토큰을 공짜로 쓰게 해준 것입니다. 토큰이란 AI가 글을 읽고 쓰는 기본 단위인데 원래대로라면 돈을 내고 써야 하는 것을 어마어마한 양으로 무료 개방한 셈입니다. 게다가 성능도 뛰어난 편이라서 개발자 커뮤니티가 발칵 뒤집혔습니다. 이것은 기술 뉴스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투자자의 눈으로 보면 가격에 관한 중요한 사건입니다.

AI의 성능이 생각보다 빠르게 흔한 것이 되고 있습니다. 불과 얼마 전만 해도 최고 수준의 AI는 몇몇 거대 기업만 만들 수 있는 것으로 간주됐죠. 그런데 잘 아시는 딥시크 모멘트 이후에 중국의 저가 AI 모델들이 급부상했고 이번에는 정체불명의 모델이 성능을 아예 공짜로 뿌리고 있습니다. 최고의 성능이 몇 달이면 추격당하고 심지어 무료로 풀린다는 뜻입니다.

성능 자체는 해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해자라는 것은 성 주위를 둘러싼 도랑이나 연못을 가리키는 말인데 경쟁자가 쉽게 넘볼 수 없게 기업을 지켜주는 방어벽이라는 뜻으로 많이 쓰입니다. 많은 투자자가 이 회사 AI가 가장 똑똑하다더라라는 말에 열광하지만 똑똑함이 금세 복제되고 공짜로 풀린다면 그것은 오래가는 방어벽이 될 수 없습니다. 벤치마크 점수가 몇 점을 경신했다느니 누구보다 몇 점이 더 높다느니 이런 평가들은 사실 금방 의미가 없어지기 때문에 결국 중요한 것은 성능이 얼마나 오랫동안 돈을 벌어다 주는가입니다.

AI 성능이 공짜를 향해 달려가는 세계에서 그동안 쏟아부은 막대한 투자는 어떻게 회수될까요? 지금 미국의 거대 기술 기업들은 AI를 천문학적인 돈을 투자해서 데이터 센터와 반도체에 쏟아붓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렇게 지어놓은 값비싼 설비가 공짜가 아니라는 데 있습니다. 설비는 시간이 지나면 낡고 가치가 감소하는데 기업은 이 감소분을 감가상각이라고 해서 해마다 비용으로 처리합니다. 즉 수천억 달러의 설비투자는 시간이 지나면 어김없이 비용이라는 청구서가 돼서 회사의 손익계산서로 돌아오는 것이죠. 그런데 설비로 만들어내는 상품, 곧 AI 토큰의 가격이 지금 0을 향해서 떨어지고 있는 겁니다. 막대한 돈을 들여서 지은 공장이 있는데 공장이 찍어내는 물건 값이 자꾸 공짜에 가까워지는 상황인 거죠.

물론 가격 하락이 만드는 수요 폭발 가능성도 간과할 수는 없습니다. 무언가를 효율적으로 쓸 수 있게 되면 총수요는 오히려 늘어난다는 제본스의 역설입니다. 데이터 요금이 싸지면서 사람들이 영상을 폭발적으로 소비하게 된 것처럼 AI가 싸지면 싸질수록 온갖 곳에서 AI를 더 많이 쓰게 돼서 전체 사용량은 폭증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값싼 AI를 대량으로 공급하는 기업은 오히려 수혜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가격 하락이 어떤 기업에는 독이고 어떤 기업에는 약이기 때문에 투자자에게 중요한 것은 이 변화 속에서 누가 실제로 돈을 버는가입니다. 성능을 팔아서 이윤을 남기던 기업이라면 가격 하락은 위협입니다. 하지만 값싼 AI를 남들보다 낮은 비용으로 공급하거나 AI를 실어나르는 길목을 쥔 기업이라면 오히려 기회일 수 있는 거죠. 참고로 이번에 화제가 된 모델도 여러 AI를 중개하는 라우팅이라는 서비스를 통해서 풀렸는데 상품인 AI 가격이 0으로 갈수록 그것을 유통하고 연결하는 길목의 가치가 부각될 수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합니다. 새 아이디어가 나오면 다들 플랫폼부터 노리는 이유입니다.

공짜로 뿌려지는 최첨단 AI는 성능 향상의 승리처럼 보이지만 실은 성능이 흔한 상품이 되어간다는 신호에 가깝습니다.

투자자가 기억할 것은 그래서 두 가지입니다. 첫째, 가장 좋고 가장 똑똑한 기술이 반드시 가장 좋은 투자처는 아니다. 둘째, 기술의 성능보다 기술을 지켜줄 해자와 투자를 회수할 수익 구조를 봐야 한다. 결국 살아남는 것은 돈을 버는 쪽이고 투자자는 살아남는 기업을 골라야 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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