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 요약
- AI 시대, 단순 주식이 아니라 채권 시장을 바라보면 세계 최대 부자 기업들이 최대 차입자로 변하고 있는 걸 볼 수 있습니다. 무디스마저 이들의 신용도를 우려하기 시작했습니다.
- MS·알파벳·아마존은 감당 가능하지만 오라클은 부도보험료(CDS)가 급등했고, 감가상각 빠른 GPU를 담보로 빌리는 낯선 대출까지 나오며 위험이 모습을 바꿔 옮겨 다니고 있습니다.
- 붕괴 경고는 아니지만 AI가 '신용의 얼굴'을 갖게 된 만큼, 삼성·SK하이닉스가 만든 칩 위에서 벌어지는 이 흐름을 한국 투자자도 금리·채권·CDS 등을 지켜봐야 합니다.

스크립트
안녕하세요. 프리즘투자자문 CIO 배재윤입니다. 오늘은 AI를 주식이 아닌 빚의 관점에서 보면 어떨지 얘기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금융 시장을 얘기할 때 많은 투자자들은 머릿속에 주식 시장을 차트로 그려봅니다. 미국 투자자는 S&P 500이나 나스닥으로, 한국 투자자는 코스피로 금융 시장을 재단합니다. 특정 산업이나 기업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AI 열풍은 다양한 방면에서 논의되지만 머릿속에서는 빅테크와 메모리 업체의 주가로 그려지는 것이죠.
하지만 이제부터는 좀 달리 봐야 될 것 같습니다. 요즘 더 많은 것을 말해 주는 것은 주식이 아닌 채권 시장이기 때문입니다. 칩을 만들고 데이터 센터를 짓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세상에서 제일 돈 많은 기업들이 어느새 세상에서 제일 돈 많이 빌리는 차입자가 됐습니다.
얼마나 돈을 잘 갚고 믿을 수 있는지를 줄 세워주는 신용평가사마저 걱정을 내비치기 시작했습니다. 세계 최고 신용평가사들 중 하나인 무디스는 이런 전례 없는 규모의 빚과 지출이 아마존, 메타, 알파벳 같은 최우량 기업의 신용도마저 위협하고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주식 차트가 아니라 신용도로 들여다볼 때가 온 것이죠.
채권 발행 규모, 즉 빌린 돈의 규모가 얼마나 되는지부터 보겠습니다. 2025년 한 해에만 AI 관련 기업들이 빌린 돈의 규모는 약 1210억 달러입니다. 최근 5년 평균의 4배에 이릅니다. 메타는 하루에 300억 달러를, 오라클은 두 차례에 걸쳐 500억 달러 가까이 빌렸으며, 알파벳은 수십 년 만에 처음으로 100년 만기 채권을 발행한 기술 기업이 됐습니다. 아마존은 최대 420억 달러를 빌리려고 준비 중입니다. 6개 대형 하이퍼스케일러의 직접 부채는 약 4,600억 달러에 이릅니다. 투자 등급, 즉 괜찮은 회사들이 빌린 돈들 중에 약 15%가 AI 꼬리표를 달고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게다가 이것은 눈에 보이는 빚일 뿐입니다. 언뜻 보면 빚처럼 보이지 않는 돈이 훨씬 큽니다. 무디스의 집계에 따르면 이들이 데이터 센터를 장기간 빌려 쓰기로 한 임대 약정은 약 1조 2000억 달러까지 부풀었는데, 그중 8,000억 달러가 넘는 몫이 아직 짓지도 않은 센터의 것입니다. 이런 약정은 채권으로 잡히지 않습니다. 하지만 수년간의 임대료 지급을 회사에 묶어둔다는 면에서 빚과 다르지 않습니다. 무디스가 이를 부채에 준하는 부담으로 보는 이유입니다.
물론 차입자가 다 같지는 않습니다. 가장 튼튼한 마이크로소프트, 알파벳, 아마존은 여전히 세계 최고 수준의 재무 구조를 갖추고 있기 때문에 빚을 감당할 만합니다. 하지만 오라클 같은 경우는 좀 다르죠. 시장은 현금이 많지 않으면서 무리하게 돈을 빌렸다고 판단했고, 이로 인해서 부도 위험을 보험 드는 비용인 CDS 가격이 몇 년 만에 최고로 뛰었습니다. 채권시장은 이 회사의 AI 부채의 일부를 우량채가 아니라 정크, 즉 못 믿을 채권에 가깝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처음 보는 낯선 구조의 대출도 등장했습니다. 사용을 시작한 반도체는 감가상각이 빠른, 곧 가치가 빠르게 떨어지는 그런 자산인데 이런 반도체를 담보로 잡아주는 대출입니다. 코어위브의 75억 달러 대출은 자사의 GPU와 고객 계약을 담보로 삼았는데, 금리는 변동 기준으로 약 11%였고 상환은 하필 GPU의 값이 떨어지기 시작하는 시점에 시작됩니다. 그런데도 신용평가사들은 이런 GPU 담보 채권에 투자 등급 도장을 찍어주고 있습니다.
위험이 사라지지 않고 여러 곳으로 옮겨지고 나뉘면서 모습을 바꾸는 것이 좀 탐탁지 않습니다. 과거 위기 때 흔히 대두되었던 결국 누가 위험을 지는가라는 물음이 여기서도 되풀이됩니다. 빚이란 것은 사라지지 않고 정해진 날에 갚아야 합니다. 빚을 갚아줄 매출은 아직 예상치일 뿐입니다. 물론 AI 사용이 설비를 채울 만큼 늘어나면 좋겠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이 얘기는 붕괴에 대한 나쁜 이야기가 아닙니다. 최상위 하이퍼스케일러들은 대단히 높은 수익을 내고 있기 때문에 직접 부채 정도는 일 년 치 영업이익으로도 갚을 수 있습니다. 돈을 빌리는 데 아직까지 큰 어려움도 없었고, 생산적인 설비를 짓기 위해서 하는 차입은 투기를 위한 차입과는 다르죠. 다만 AI 이야기가 어느새 신용의 얼굴을 갖게 됐고, 신용은 주식과 다르게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주식은 떨어지면 그만이지만 빚은 성과가 어떻든 관계없이 제때 갚아야 됩니다.
한국 투자자에게도 먼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 거대한 이야기들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제공하는 칩 위에서 이루어집니다. 그러니까 이제 한국 투자자도 두 기업의 주가만으로 미래를 판단하기 어렵게 됐습니다. AI 산업의 첨단에 서 있는 저 거대 기업들이 돈을 빌리는 대가로 요구받는 금리, 금리가 빠르게 오르진 않는지, 채권과 보험료가 어떻게 평가받고 있는지 이런 것들까지 살펴볼 수밖에 없게 됐습니다.
기술 자체에 대한, 즉 AI 자체에 대한 의심은 예전보다 줄었지만, 기술을 만드는 자금이 시험대에 올랐다는 점을 받아들여야 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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