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 요약
- 흔히 확신이 있어서 몰빵을 한다고 착각하지만, 사실은 몰빵해야 하니까 확신을 찾는 경우가 많습니다. 집을 사려면 10억 원이 필요한데 수중에는 2,000만 원뿐이니, 방법은 몰빵 대박뿐이라는 식입니다.
- 하지만 필요한 수익률은 내 사정일 뿐 시장은 그 사정을 모릅니다. 급등주는 늘 존재하지만 내가 고르기는 어렵습니다.
- 기업 분석, 비용 절감, 저축률 높이기처럼 풀 수 있는 문제는 풀어야 합니다. 다만 언제까지 얼마가 있어야 한다는 목표는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 몰빵은 ‘반드시 가져야 한다고 믿는 10억 원’이라는 전제에서 출발합니다. 그 전제를 고치면 몰빵이라는 결론도 사라질 수 있습니다.

스크립트
안녕하세요.
프리즘 투자자문 CIO 배재현입니다.
요즘 해외 온라인에서 맥싱이라는 말이 유행한다고 합니다. 극대화인 맥시마이즈에서 나온 접미사로 무엇이든 수치로 재고 끝까지 끌어올린다는 뜻입니다. 앞에 붙는 단어만 바꾸면 됩니다. 외모를 극대화하면 룩스맥싱. 수면을 극대화하면 슬립맥싱. 사회적 지위를 극대화하면 스테이터스 맥싱입니다. 돈을 극대화하면 파이낸스 맥싱이겠죠. 겉으로만 보면 자기계발 분야 신조어쯤으로 보입니다. 운동하고 잘 자고 돈 모으자는데 누가 말리겠습니까.
그런데 맥싱은 자기계발과 좀 결이 다르다고 합니다. 영국 셰필드대에서 철학을 연구하는 호콘 에브에모라는 분은 맥싱을 사회적 신체적 특성을 무자비하게 수치화하고 최적화하는 것이라고 정의했습니다. 핵심은 무자비하게입니다. 룩스맥싱의 목표는 지금보다 나아 보이는 것이 아니라 외모로 남을 압도하는 것입니다. 얼굴 대칭을 맞추겠다면서 턱뼈를 두드려 부수고 살을 빼겠다면서 각성제를 스스로 처방하는 사례까지 나옵니다.
그래서 맥싱의 본질은 행동이 아니라 세계관, 즉 세계를 보는 방식입니다. 나를 기능의 묶음으로 보고 모자란 기능은 고장 난 부품처럼 고치거나 갈아 끼우면 된다고 믿습니다. 삶 전체가 정답이 있는 문제 풀이가 됩니다. 맥싱의 비극은 이 최적화의 과정이 틀렸다는 데 있지 않습니다. 삶을 보는 시야를 문제 풀이 하나로 좁혀버린 것. 그리고 문제가 애초에 틀렸다는 데 있습니다.
이 맥싱의 비극을 금융시장으로 가져오면 익숙한 장면이 보입니다. 최고의 종목 하나를 찍어서 전부 몰아넣는 몰빵입니다. 몰빵하는 사람은 흔히 확신이 있어서라고 말을 합니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순서가 거꾸로인 경우가 많습니다. 확신이 있어서 몰빵하는 것이 아니라 몰빵해야 하니까 확신을 찾는 겁니다.
의외로 연역적이고 논리적인 문제 풀이의 사고를 거친 것인데 사고는 대개 이런 식으로 전개됩니다. 전제 1. 집을 사려면 10억 원이 있어야 한다. 전제 2. 그런데 수중에는 2,000만 원뿐이다. 전제 3. 평범한 방법으로는 차이를 메울 수 없다. 결론. 그러므로 방법은 몰빵 대박뿐이다.
대박을 계산하는 방식은 단순합니다. 10년 후에 집을 산다고 하면 필요한 수익률은 연 복리로 48%이지만 그렇게 계산하는 이는 일부입니다. 보통은 원금을 그대로 두고 5배 뻥튀기인 1억을 10번만 성공하면 된다고 계산합니다. 복리든 달리든 이렇게 있어야 할 돈에서 거꾸로 짠 투자를 많이 합니다.
근데 이렇게 짠 투자는 왜 실패할까요? 첫째, 필요한 수익률이 가능한 수익률을 만들지 않습니다. 매년 5배 혹은 연 복리 48%가 필요하다라는 것은 내 사정입니다. 시장은 내 사정을 모릅니다. 10억을 상수로 둔 문제 풀이의 문법은 답이 반드시 존재한다고 가정하지만 시장에서는 가정이 성립하지 않습니다.
둘째, 급등주는 항상 존재합니다. 하지만 내가 고르기는 어렵습니다. 애리조나 주립대의 헨드릭 베센빈더 교수가 1926년 이후 미국 상장 주식 전체를 분석한 결과 미국 주식이 채권보다 낫게 만들어준 것은 상위 4% 종목들의 힘이었습니다. 전체 종목의 약 57%는 상장 기간 전체 수익률이 1개월짜리 국채보다도 낮았습니다.
기업을 분석하고 가치를 평가하는 일은 문제 풀이가 맞습니다. 비용을 낮추고 저축률을 높이고 세제 혜택을 최대화하는 일 역시 풀리는 문제, 답이 있는 문제입니다. 풀 수 있는 문제는 풀어야겠죠. 다만 언제까지 얼마가 있어야 한다라는 목표는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계좌를 정답이 있는 문제로 풀려는 시도를 멈춰야 합니다.
2,000만 원이 결국 1억 원밖에 안 되더라도 몰빵으로 고개를 돌려서는 안 됩니다. 몰빵은 이 가져야 한다고 착각하는 돈 10억 원에서 출발합니다. 가져야 한다는 전제를 고치면 몰빵이라는 결론도 사라집니다. 외면하고 싶은 슬픈 진실이지만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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