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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행은 왜 3,500억 원어치 금을 사고도 금이라 부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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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이면서 금이 아니다, 한은의 금 ETF (배재현 C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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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요약

  • 한국은행이 13년 만에 금 투자에 나섰지만 실물이 아닌 금 ETF를 약 2억 5천만 달러만큼 샀고, 이를 금이 아닌 유가증권으로 분류했습니다. 전 세계 중앙은행 중 금을 ETF로 사는 곳은 4%에 불과합니다.
  • 실물 금에 비해 종이 금(ETF)에는 '신뢰'가 부족합니다. 2022년 러시아 외환보유액 동결 때도 실물 금만은 건드리지 못했듯, 위기 시 체제 자체를 못 믿을 때 찾는 건 실물이라 최근 중앙은행들은 실물 금 매입 속도를 예전의 2배로 늘리고 있습니다.
  • 다만 IMF도 실물금의 유동성 리스크를 지적한 바 있든 종이 금이 틀린 선택은 아닙니다. 다만 가격 변동에 대한 노출이 목적이면 ETF로 충분하지만, 위기 시 보험이 목적이면 종이로는 부족합니다.

스크립트

안녕하세요. 프리즘투자자문 CIO 배재현입니다. 오늘은 금인데 금이 아닌 것에 대해서 얘기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바로 한국은행의 금 ETF 이야기입니다.

매일매일 주식, 종목, 섹터, 지수 이렇게 같은 것만 계속 쳐다보고 있으면 너무 머리 아프고 스트레스 받잖아요. 그러니까 가끔은 이렇게 교양 수준에서 들을 만한 것들, 그리고 언젠가 실생활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것들 이야기 들려드릴 테니까 재밌게 들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한국은행이 13년 만에 금을 샀습니다. 그런데 금괴는 한 덩이도 사지 않았습니다. 미국에 상장된 금 ETF, 즉 SPDR 골드를 약 2억5천만 달러, 우리 돈으로 약 3,500억 원 정도 산 것이 전부입니다.

더 흥미로운 대목은 따로 있습니다. 한은은 이 금을 외환보유액에서 금으로 쳐주지 않습니다. 실물 금이 아니라 유가증권으로 분류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보수적인 금 보유자 중 하나인 중앙은행이 자기가 산 금을 금이라고 부르지 않는 셈입니다. 실물 없는 금 투자의 시대는 여러모로 이상하고 또 재밌습니다.

먼저 한은이 실제로 무엇을 했는지부터 확인을 해보겠습니다. 이번이 한은의 첫 금 ETF고, 2013년에 실물 금 20톤을 사들인 이후에 13년 만에 금 투자입니다. 다만 한은은 여전히 실물 금 104톤을 잉글랜드 은행 금고에 두고 있고, 이번에 국내산 실물 금을 사들이는 채널까지 새로 만들면서 실물과 ETF의 두 경로로 보유할 것임을 예고했습니다. 즉 실물을 버리고 종이금으로 갈아탄 것이 아니라, 움직이기 편하지만 금으로 쳐주지는 않는 종이금도 보유하기 시작한 것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흔한 일은 아닙니다. 전 세계 중앙은행 가운데 금을 ETF로 사는 곳은 4%에 불과합니다.

중앙은행들은 왜 편리한 종이금을 많이 보유하지 않고, 또 금으로 쳐주지도 않을까요? 금은 물가가 오르면 인플레이션 헤지 기능을 하고, 포트폴리오에 넣으면 분산 기능을 합니다. 여기까지는 종이금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실물금에는 있고 종이금에는 없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신뢰입니다.

사람들은 금융 위기가 올 때도, 시스템 자체에 대한 신뢰가 흔들릴 때에도 금을 찾습니다. 종이금은 유가증권입니다. 신뢰가 부족합니다. 2022년 러시아의 외환 보유액이 동결될 때조차 실물로 보유한 금만은 건드릴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중앙은행들은 최근 몇 년간 직전 10년의 2배에 이르는 속도로 금을 사들여서 자국 금고에 보관합니다.

물론 종이금을 보유하는 것이 잘못이란 이야기는 절대 아닙니다. 대부분의 투자자에게 대부분의 시기에는 ETF가 금을 갖는 합리적인 방법입니다. 싸고 유동성이 좋고 금고도 보험도 필요 없고 소액으로 사고 또 리밸런싱하기가 쉽습니다. 목적이 금 가격에 대한 노출과 분산이라면 ETF로 충분한 거죠.

게다가 실물 금이라고 해서 또 완벽한 안전자산인 것도 아닙니다. IMF는 바로 지난달에 금은 변동성이 크고 위기 때 처분 가격이 불확실해 외환 보유액의 유동성 부분에는 적합하지 않다라고 지적을 했습니다. 요점은 금괴만 진짜 금이라는 것이 아니라는 거죠. 금은 서로 다른 두 가지 일을 하고, 종이금은 그중 하나는 잘하고 다른 하나는 잘 못할 뿐입니다.

그래서 금을 보유하는 형태를 하나의 사다리로 보면 이해가 쉽습니다. 맨 위에는 내 손 안의 실물, 아래에는 내 몫으로 따로 할당돼서 보관된 금. 이렇게 이제 두 가지는 비용도 크고 번거롭지만 실체가 있습니다. 아래에는 은행의 금 통장, 즉 골드뱅킹이죠. 이 금 통장이 있는데, 여기서부터는 금괴가 아니라 청구권, 즉 권리를 갖는 방식입니다. 그리고 또다시 아래에는 ETF가 있고 선물이 있고, 약간 좀 더 아래에는 금광주가 있고, 맨 끝에는 아직은 논란 속에 있는 디지털 금이 있습니다. 한 칸 내려갈수록 편리해지는 대신 손에서는 멀어집니다.

이렇게 손에서 먼 금 중 하나인 ETF를 한은은 금이 아닌 유가증권으로 신고했을 때, 한은은 이 둘이 서로 대체되지 않는다는 것을, 곧 금의 가격은 가지면서 금의 보험은 갖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한 셈입니다.

그러니 어떤 형태로든 금을 사기 전에 던질 만한 유용한 질문은 금이냐 아니냐가 아닙니다. 나는 금의 어떤 역할을 사는가, 즉 가격과 안전성 중에 무엇을 갖고 싶은가입니다. 가격이 목적이라면 종이로 충분합니다. 그러나 시스템이 흔들릴 정도의 위기가 언젠가 올 것이라고 보고 그날에 보험을 들고 싶다면 종이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중앙은행조차 금이라고 부르지 않는 금을 보유한 시대에, 이 정도의 구분만은 확실히 해두어야 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핵심 키워드

한국은행 금 ETF 실물 유가증권 외환보유액 매입 IMF 유동성